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졸업논문사학 한국전쟁 중 흥남철수 작전과 민간인철수문제

졸업논문사학 한국전쟁 중 흥남철수 작전과 민간인철수문제
[졸업논문][사학] 한국전쟁 중 흥남철수 작전과 민간인철수문제.doc


목차
머릿말

1.흥남 철수작전의 실행과정
① 장진호 전투
② 흥남 철수작전의 실행과정

2.흥남 철수에 대한 언론보도

3.당시 미군의 심리전과 피난민의 선택적 수용
① 월남동기
② 미군의 심리전과 피난민의 선택적 수용

맺음말


본문
12월 11일 해군은 흥남 주변에 공중엄호와 철의 장막을 설정할 계획을 확정하였다. 중공군이 흥남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함포사격에 의한 철의 장막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해상에서 함포지원의 책임은 힐렌코에터 해군 소장에게 배당되었다. 함포지원전대는 12월 15일부터 8인치 포의 차단 및 교란사격을 비롯하여 5인치 포의 야간 조명사격을 개시하였다. 육상 사격통제반들은 해군 함포가 매우 효과적이며 많은 적군을 격파했다고 보고하였다 함포지원은 24시간 내내 계속되었고 야간에는 조명사격이 지상군의 방어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항공에서의 도움도 계속되었다. 미 제10군단이 해상으로 철수할 경우 10일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처럼 오래 걸린다면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아몬드 소장은 공중수송방법을 최대한 활용하기를 원했다. 흥남에서 가까운 연포 비행장에서 12월 14일부터 대규모 공중 철수작전이 시작되었고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또한 흥남~함흥의 교두보가 붕괴되자 해군함정과 함재기들은 적이 해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규모 폭격과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미 제 5공군의 B-26경폭격기들은 야간에 출격하여 적을 공격하였다. 이렇게 유엔군측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확보함으로써 흥남 철수 작전을 큰 방해 없이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또한 중공군의 큰 방해공작이 없었기 때문에 10만 명이나 되는 피난민을 수송할 시간도 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성공적으로 끝난 흥남 철수 작전에서 105,000명의 국군과 유엔군, 91,000명의 피난민, 17,500의 차량,그리고 35톤의 화물이 해상으로 철수하였다. 연포 비행장에서는 인원 3,600명, 차량 19대, 화물 1,300톤 그리고 수백 명의 피난민이 연포 비행장에서 항공편으로 수송되었다.


2. 흥남 철수에 대한 언론보도


1950년 당시 조선일보를 살펴보면 흥남 철수 작전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남(興南) 교두(橋頭)확보
함포사격(艦砲射擊)으로 불 장막
. (1950년 12월 19일 조선일보)


미 해군 함포는 칠일밤 점차 축소되는 흥남의 연합군 교두보주변에다 불의 장막을 쳤다. 한편 미 함재기의 공격과 야포 사격도 여기에 첨가되어 중공군의 위협을 격퇴시켰다.
.
중공군은 극히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으며 그들은 야포 공격에 있어서 핸디캡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ㅇ선특파원 수기에 의하면 이겨 교두보자체가 무장한 숙영지 즉 배수지진 이여서 평시엔 후방에 있을 타이피스트 사무원까지 총을 들고 있으나 공포의 기색은 ㅇ연 없다 한다.








전곡북방 전선(戰線)별무(別無)변동
흥남 부근 적 손해기대
. (1950년 12월 20일 조선일보)

전곡북방으로부터 양구에 이르는 피아의 대치 선에는 계속하여 산발적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으나 전선에 커다란 변동이 없으며 양구와 ㅇ양을 연하는 선에서는 인제 부근에 소수의 적 게릴라부대가 출현하였으나 아군은 이를 격퇴하였으며 전 전선에 걸쳐 여유 있는 방어진을 견지하고 있다
이, 동북부전선의 유엔군과 아국군부대는 흥남을 중심으로 구축된 아 반월형 교두보주변에 운집하여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중공적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계속 한지하고 있으며 강력한 해상포화와 지상 야포대의
포화세례로 말미아마 적은 계속하여 기대한 손해를 받고 있다


흥남철수에 성공
미제십군단남한모항에 상륙 (1950년 12월 27일 조선일보)

15,000의 유엔군 및 한국인 인원의 동북전선으로부터의 해상철수는 4일 밤으로 완료되었다


본문내용
민의 선택적 수용
① 월남동기
② 미군의 심리전과 피난민의 선택적 수용
맺음말
머리말
일명‘크리스마스 카고’라고 불리는 흥남 철수 작전 후 미군은 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남한으로 해상을 통해 후퇴하였다. 비록 철수 작전이었지만 흥남 철수 작전은 그 어떤 작전보다도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 철수작전 당시 같이 내려온 피난민의 규모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한 사건이 있었는데 흥남 철수작전에 이용된 7800톤급 수송선 한 척이 1만4000명의 피란민을 수송한 사실이 기네스북에 오른 것이다.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바람 찬 흥남 부두’라는 가사로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는 이 작전은 국외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큰 규모의 후퇴작전이며 피란민 수송작전이다. 흥남 철수

참고문헌
정일권,『정일권 회고록,전쟁과 휴전』,동아일보사,1986
정형섭,『세월을 넘어 사선을 넘어』,삶과꿈,1997
미 해외 참전용사협회 엮음,『그들이 본 한국전쟁2』,눈빛출판사, 2005
브루스커밍스,존할리데이,『한국전쟁의 전개과정』,태안, 1989
전쟁기념사업회,『한국전쟁사 제 5권 중공군개입과 새로운 전쟁』,행림출판,1992
현봉학,『현봉학과 흥남 대탈출』,경학사,1999
마틴러스,『브레이크아웃 1950 겨울,장진호 전투』나남출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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